'요리영화'는 일반적으로 영화 분류 카테고리로 취급받지 못한다. 영화 리뷰사이트나 네이버 영화랭킹 같은 곳에서도 요리영화는 대부분 '가족'이나 '드라마' 등의 분류에 애매하게 발을 담그고 있다. 나는 그게 불만이다.
물론 요리를 빙자한 가족영화나 멜로 영화도 많지만, 영화 자체에서 요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남다른 '진짜' 요리영화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진짜 요리영화들은 공통적으로 1. 영화 속 음식들이 먹어보고 싶게 만든다. 2. 등장하는 요리를한 번쯤 만들어보고 싶게 만든다. 3. 요리하는 과정이 비중있게 비춰진다.
그리하여 오늘은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최고의 요리영화를 몇 개 소개해볼까 한다.
1. 남극의 쉐프
그렇다. 첫 번째는 바로 '남극의 쉐프' 되시겠다. 나름 유명해서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 영화.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의 강점이 가장 잘 발휘되는 장르가 요리, 멜로, 공포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를 보면 '일본의 요리영화'가 무엇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니시무라 준의 '재미있는 남극요리인'을 영화화한 것으로, 우연히 남극으로 발령난 요리사 주인공이 대원들과 겪는 에피소드를 재미나게 그려냈다. 특히 식재료가 매우 한정되어 매일 맛없는 식사만 하던 대원들에게 장인정신을 발휘해서 매 끼를 호텔 식사처럼 차려내는 주인공을 보면 여기가 정말 남극인지 헷갈리게 된다. 어지간한 요리 영화에 나오는 음식보다 훨씬 맛있어 보인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
잘 기억이 안나는데, 남극에서 잡은 랍스터였던 것 같다. 거기서 잡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다른 대원이 새우튀김 먹고 싶다고 하니깐 통채로 튀겨주는 주인공. 요청받은 요리는 무엇이든 다 해낸다.
이렇게 중국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별의 별 요리가 다 나온다. 이 영화 보고나서는 나도 남극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요리 이외에도 여러가지 웃기는 에피소드가 많다. 일본 특유의 정색한 표정으로 엉뚱한 행동 하는게 너무 재밌다.
이것도 영화의 한 장면 ㅋㅋ
유쾌하게 사는 남극기지 아저씨들. 내가 지금까지 '남극의 쉐프' 추천해줘서 재미없다는 사람 하나도 못봤다.
2. 안경
카모메 식당을 넣을까 하다가 '안경'을 넣었다. 너무 유명하니깐 카모메 식당은 뭐 다들 아실거라 믿고, 비슷한 분위기지만 덜 알려진 '안경'을 소개하겠다.
이 영화는 '고요한 집밥'과 같다. 도시 생활에 지친 주인공이 시골 해변마을로 휴가를 오고, 거기서 조용히 밥을 먹고 그곳의 삶에 물들어 간다. 대사도 거의 없고 시종일관 알 수 없는 기묘한 체조, 식사, 산책, 식사 등이 반복된다. 그래서 재미없냐고? 그러면 애초에 소개를 안했지.
어디서 한 번쯤 보았을 법한 메뉴. 만들기 어렵지 않은 소소하지만 정갈한, 먹고 싶어지는 음식들. 우리 마음속에 각인된 '집밥'의 이미지. 식탁에 둘러앉아 따듯하고 다정하게 김이 나는 접시를 마주한게 언제인지. 영화를 보다보면 나도 저기에 가서 한달만이라도 있다 오고 싶다는 욕구가 참을 수 없이 일어난다.
여기에서도 랍스타를 먹는다. 참 복스럽게 한 입 가득 먹는게 보기 좋다. 맥주는 필수. 참고로 왼쪽 초록 옷 아주머니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팥빙수. 손으로 기계를 돌려 서걱서걱 갈아낸 얼음. 부슬부슬하게 높이 쌓인 얼음 밑에는 오래오래 끓여낸 달콤한 팥이 한가득. 위에다 시럽 한 스푼을 뿌려서 먹는 진짜배기 옛날 팥빙수...라는 느낌. 아아... 참을 수 없이 먹고 싶어진다.
우리는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본다. 같은 세상을 어떻게,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 고요하고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에 보고나면 왠지 뚝배기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3. 쉐프 (프랑스 영화)
이 영화 정보 검색하실 때는 프랑스 영화 쉐프라고 치셔야 나옵니다.
우리의 레옹아저씨가 나온다! 까칠한 스타쉐프와 젊은 천재쉐프가 함께하는 코믹하고 맛있는 영화, 쉐프. 주방에서의 치열한 모습과 맛있기로 소문난 프랑스 요리들이 한가득 나오니 더 이상 바랄게 없다. 특히 이 영화는 재료를 고르는 모습, 조리하는 모습을 시간들여 보여주니 신기하기도 하고, 쉐프라는 직업의 프로페셔널함에 거듭 감탄하게 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진지하고 무거운 영화가 아니다. 코믹함 속에 어마어마한 요리들을 가득 담아냈기에 보는 내내 눈이 즐겁고 배가 고파지는 영화인 것이다. 뭐랄까, 영화 '라스트 홀리데이'의 뒷부분에 나오는 음식 파트를 확대해 놓은듯한 느낌이다.
코가 참 크다. 흠흠.
레옹 아저씨가 쉐프라는 배역에 참 잘어울린다. 요리하는 과정이 어찌나 재밌고 멋져 보이던지.
프랑스 요리영화인데, 디저트가 안 나올수 있나?
헠헠헠헠헠헠ㅎ커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이거다. 이게 뭐냐고? 소위 '분자요리'라는 것. 기존 요리의 재료들을 화학적으로 분해하고 재결합해서, 재료의 맛은 살리되 모양은 전혀 다르게 만드는 것이 분자요리다. 요리에 과학이 결합된 형태로, 아주 최신 형태의 요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매우 비쌈.
상상이 안가는 분들을 위해 예를 들자면, 비빔냉면의 육수를 주사위 모양의 빨간젤리로 만들고 면과 고명을 갈아서 초록 색소를 넣어 위에 얹으면 모양은 딸기모양인데 맛은 비빔냉면하고 똑같은 맛이 나는 한입거리 비냉이 된다! 뭐 대충 이렇게 상상하시면 됨.
영화에서 코믹하게 표현되어서 가상의 요리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존재한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청담동 쪽에 파는 곳이 있다는 얘길 들었음. 아무튼 분자요리란게 슬쩍나와서 인상깊었고, 여러가지로 재밌는 영화.
이렇게 삼대장을 적고, 나머지는 귀찮으니깐 대충 제목만 적어보자면
카모메 식당
줄리앤줄리아
호노카 보이
하와이언 레시피
행복의 향기
해피해피 브레드
엘 불리
지로의 꿈
등이 있다.
참고로 밑의 두 개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근데 전혀 안지루하니깐 꼭 보시길. '엘 불리'는 스페인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엘 불리를 밀착 취재한 다큐. 무려 전세계 레스토랑 랭킹 1위. 1년에 6개월은 문을 닫고 연구소로 셰프 전원이 이동해서 요리 연구에 들어간다. 최소 3년전에 예약해야 먹을 수 있음. 아아.. 이 영화는 너무도 신기하고 신기하다. 하드코어 요리영화를 원하면 '엘 불리'를 꼭, 꼭 볼 것. 아, 그리고 여기서도 분자요리가 주로 나온다! 신기!
글로만 쓰고 말려다가 이미지 첨부한다.
'지로의 꿈'은 우리가 항상 궁금해 하던 스시 장인에 대한 영화다. 아주 꼬부랑 할아버지인 스시마스터 '지로'를 밀착취재한 영화. 미스터 초밥왕을 재미나게 봤다면 꼭, 꼭 챙겨보길 바란다. 아주 작은 구멍가게가 미슐랭 3스타를 받고, 한끼에 300만원이 넘지만 6개월 전에 예약해도 먹을 수 있을까 말까. 생선 고르는 방법, 다듬고, 쥐고, 달걀말이를 하고, 여러가지, 정말 장인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참고로 오바마 대통령도 여기에서 스시 먹었음. 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