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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일상, 국제 결혼, 기타

4. 언어: 언어의 장벽, 극복은 가능할까?

<하노버 동물원에서 본 북극곰. 신기하기도 하지만 불쌍했다.>

 

<마트에서 이 만큼 장을 보면 한화로 약 6만원 정도가 나온다.>

 

국제 연애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언어장벽이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접하기 쉬운 영어가 아닌 독일어를 사용하는 아가씨와 만나다 보니 나도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첫 만남에서 두 시간이 넘게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와이프는 (곧 결혼하니까, 와이프라고 칭하겠습니다.) 나중에서야 영어에 자신감이 없어서 조용히 있었다고 실토했다.

내게 영어는 원어민만큼은 아니지만 불편함 없이 말할 수 있는 제1 외국어인데, 와이프는 고등학교 이후로 영어를 쓴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독어를 할 수 있을리 만무하니, 처음에는 실컷 영어로만 대화했다.

첫 만남 후 5개월 정도 떨어져 지낸 게 어쩌면 도움이 되었던 것도 같다.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으니 싸울 일도 없고, 따라서 언어의 장벽을 크게 느낄 일 없이 감정이 두터워질 수 있었다.

 

완벽한 영어는 아니지만 일상적인 대화는 대부분 영어로 소통하는데 부족함이 없고,

말다툼하거나 좀 더 어려운 이야기를 할 때는 쉬운 방식으로 풀어서 대화해야 한다.

이는 내가 1년간 독일어를 배우면서 독어로 소통하는 시간을 늘려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화가나면 말이 잘 안 나오니까 잠시 조용하게 있거나, 그냥 서로 편한 언어로 한바탕 쏘아댄다.

그러고 나면 뭐가 화났는지를 조금 부족한 언어 실력으로 소상히 설명한다.

그러다 보면 화가 풀린다.

 

언어가 장벽일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장벽이 도움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같은 한국인끼리 만났을 때 오히려 쉽게 하지 못했던 방식의 소통이 일부 강제되기에

오히려 나는 지금 관계에서 더 감정적으로 속이 시원하다.

 


<작년에 구운 바닐라 킵펠. 엄청나게 달았다.>
<오늘 구운 바닐라 킵펠. 깔깔대다가 조금 탔지만  더 맛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쿠키를 구웠다.

바닐라 킵펠이라고 불리는 쿠키인데, 작년 이 맘때도 같은 쿠키를 구웠다.

 

버터 반, 설탕 반 밀가루 넣어서 구운 뒤에 표면에 바닐라 설탕까지 뿌린 이 쿠키는 혀가 녹도록 달았다.

그렇게 달디 단 쿠키를 한 가득 상자에 넣어서 작년에 한국 우리 집으로 보냈다.

너무 달아서 부모님이든 형이든 동생이든 잘 먹지 못할 것을 알았지만, 왠지 우리가 함께 한다는 증명서처럼 느껴져서 홀가분하게 택배를 떠나보냈다.

 

올해의 바닐라 킵펠은 새로운 레시피로 만들었다.

덜 달고 더 바삭하다. 한 해가 지났더니 쿠키 굽는 게 더 쉽고 맛있어졌다.

우리 관계도 그만큼 더 두터워지고 따듯해졌다.

 

따듯한 오븐을 보면서, 아마 이렇게 쿠키를 굽는 일이 독일에 사는 우리 김 씨 가족의 전통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