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에서 해외영업

일본회사의 유럽지사는 유럽회사가 아니다.

요 몇 주간 참 심란한 나날이었다.

 

독일회사에 다니다가 새로운 잡 오퍼를 받고 3달간의 긴~ 퇴사 통보기간을 거쳐 새 회사에 이직한게 약 한달 전이다.

새 회사는 일본회사의 유럽 지사인데, 화학제품을 중개하는 무역회사였다.

 

왜 "였다"냐고?

그래서 그 이야기를 적어볼까 한다.


새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한 뒤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분명 독일 한복판에 있는 회사인데 독일회사의 분위기와는 아주 달랐다.

업무시간엔 아무도 말 한마디 하지않고 조용했으며, 이는 유럽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약간 숨막힌달까... 이리저리 말을 걸어보려 했으나 다들 조용히 잠시 이야기하다 자리로 돌아가고,

마치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었다....

한국에서 일할 때 자주 보았던 아주 익숙한 풍경이었던 것이다.

 

업무를 시작한 지 3일차, 상사에게서 첫 경고를 받았다.

경고의 이유는 "지나치게 친근하다" 였다.

 

분명 처음 인사할땐 활기차게 인사했으며, 나는 일본인이 아니다.

따라서 일본식 호칭(~~상)을 사용하지 않으며 개개인에게 물어보고 퍼스트 네임으로 사람들을 불렀던 것이다.

더불의 나의 직속 상사 또한 자기를 퍼스트 네임으로 부르라고 먼저 말했기에 그리했을 뿐인데, 그게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메일의 내용은 이러했다.

"여기는 회사이며, 나는 당신의 친구가 아니다. 친근한 것도 좋은데 너무 친한것처럼 말을 걸고 하지 말라. 나는 매니저이며 너의 상사다. 격식을 지켜달라."

 

글쎄, 무슨 격식을 지켜야 할 지...조금 헷갈렸다.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혹시 내가 실례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던 도중, 다른 일본인 상사가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유럽인과 결혼했고, 유럽에서만 십년이 넘게 살아온 그는 내게 말했다.

"너의 상사와 유럽지사의 지사장은 일본 본사에서 발령나서 온 사람들이니 조심해야 한다.

일본 문화를 고려하면, 네가 뭘 실수해도 그들은 즉시 너에게 말하지 않고 수습기간 후에 잘라버리거나, 나중에 가서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 지뢰를 밟기 전에 항상 발 밑을 살피고 행동해라."


뒤통수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맞지도 않은 뒤통수가 벌써 얼얼한 기분이었다.

여기를 일본회사로 생각해야 할 지, 독일회사로 생각해야 할 지 헷갈렸고, 그 중간 어디쯤이라면 도대체 선은 어디에 그어져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아직 시작한지 며칠 안되었으니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이직한 지 2주가 지난 날에 터졌다.

 

아침에 한국지사에 나를 소개하는 화상 미팅이 있었다.

한국 지사의 팀장과 부장이라는 사람들은 첫 마디에서 부터 내게 한국인이냐 물었고,

당연히 한국인이라고 하자 내게 "그러면 한국 사람들 고객들이랑 어떻게 노는지 아시죠?" 라며 은근한 눈길을 보내왔다.

 

얼마나 고객과 술을 많이 마시며, 유흥도 함께 즐겨야 하는게 당연한 걸 알지 않느냐는 그들에게 나는 그냥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미팅을 마친 직후, 상사에게 일대일 면담을 신청했다.

 

한국지사 사람들이 내게 고객과 유흥을 언급하는데, 나는 이게 성매매를 포함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상사는 내게, 사실 고객들과 함께 가라오케에 가서 여자를 부르거나, 성매매 장소에 가는 것은 일본에서 아주 흔하게 하는 영업의 방식이며, 자신도 일본에서 아주 많이 해온 접대라고, 사실 자기도 아내와 두 자식이 있지만 성매매 접대하는 것 꽤 즐긴다고 말했다.

 

쓰다보니 화가난다...

다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게 있으면 하겠으니, 성매매만은 절대 못하겠다 하였다.

상사는 그게 필수적인 업무의 일부라 말했다.

일단 알겠으니 월말에 이야기하자던 상사는 그날 오후 내게 모든 회사 물품을 내려놓고 퇴사하라며 권고 사직서를 내밀었다.


이게 독일 한복판에 있는 일본회사에서 겪은 나의 환상적인 경험담이다.

위 이야기는 절대 어떤 과장이나 허위사실이 없음을 밝힌다.

 

치졸하게도 그들은 유럽인 영업사원 동료들에게는 성매매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에게 말하면 바로 고소당할테고

오직 내가 한국인이니까, 너는 이해하고 수긍하지 않느냐며 내게만 이야기한 것이다.

인종차별과 성추행이 섞인 이러한 일을 내가 겪을 줄이야.

 

아내와 이야기했고, 아내는 너무나 잘 관뒀다며 나를 백번 지지해줬다.

그 회사의 다른 동료들과도 짧은 시간동안 친해져서 같이 연락하고 회사욕을 많이 했다.

고소할까 고민을 했으나 일단은 다른곳에 취업을 먼저 한 후 알아보려 한다.


분명히 유럽에 와서 아시아 회사의 유럽지사에 일자를 찾는 분들이 계실것이다.

모든 회사가 다 그렇지는 않겠으나, 정말 많은 수의 아시아 회사는 최소한 아시아인들에게는 절대 유럽회사가 아니다.

그들은 고용하는 현지채용 아시아인들에게 유럽인같이 일하길 기대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새로운 기회를 찾는 이들 중, 누군가가 취업 전 이 글을 보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