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고 결혼하면서 아마 가장 중요하고 떨리는 순간은 언제일까?
아마 많은 한국분들에게는 처음으로 파트너의 부모님 혹은 가족을 만나는 순간일 것이다.
한국에서 결혼이야기가 나오면 많은 이들이 "결혼은 가족과 가족간의 행사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것을 보면
확실히 당사자들 뿐 아니라 그 가족들이 신경쓰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으로 아내를 만났고, 한국에서 뜬금없이 날아와서 아시아인과 접점이 1도 없는 가족에 다가서자니
이건 뭐 무지무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내가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 직장: 없음
- 독일어: 못함
- 독일: 처음 살아봄
아마 내가 딸 가진 아빠였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나와 처가댁의 첫 만남은 크리스마스였다.
독일에 온게 10월 1일이었으니, 오자마자 아내랑 동거를 시작했고 약 2달이 조금 넘은 시점에 아내의 가족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말도 안통하는 (당시) 여자친구의 가족을 만나러 가자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독일에서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설날+추석을 합친 것만큼이나 커다란 명절이 아니던가.
며칠 전부터 안절부절하며 아내에게 너네 가족은 어떻냐, 가면 가족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냐
부모님 성격은 어떠며 나는 가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 수도 없이 물어봤지만
쿨한 아내는 그냥 "가면 밥먹고 뭐 쉬다 오는거지" 정도로 정말 속편하게 말을 했다.
얘가 나를 멕일려고 그러나, 테스트 하려고 그러나, 그냥 정말 신경 안쓰나, 궁금증과 분노와 섭섭함과 불안감이 뒤섞인 채로 처음 처갓댁에 도착했다.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가서 인사를 하고 나서 정확히 5초 뒤에 아내는 쌩하고 동생들과 어디로 사라졌다.
아주 어색하게 식탁에 앉아있던 내 심정은 아마 다들 공감하지 않으실까.
너무나 크게 섭섭한 마음에 집에 가면 푸닥거리좀 크게 해야겠다고 백번 정도 다짐하며 앉아있던 내게
장인어른이 와서 영어로 말을 거셨다.
물론 장인어른도 영어를 잘 못하셔서 대화는 더디게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말을 나눠주시는게 반가웠다.
그 뒤에 아내의 외할머니가 오셔서 내게 독일어로 뭐라뭐라 아주 길~~게 말씀을 하셨고
나의 입꼬리는 미소를 짓다못해 슬슬 경련이 나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독일에서는 사귄지 얼마 안된 파트너라도 명절에 집에 데려오는 일은 흔한 편이었고
그게 딱히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다들 그냥 편하게, 손님을 상전대하듯 하는것도 아니며 일상처럼 대해주었던 것이다.
하룻밤 자고 집에 돌아오는 길, 와이프에게 나의 섭섭함을 불같이 토해냈으며
집에 가서도 두어 번 쯤 더 성질을 내고 나니까 아내는 마침내 나의 심정을 이해했고
요즘도 가끔씩 그 때 일 미안해~ 라며 슬그머니 말을 꺼내곤 한다.
적다보니 이야기가 너무 샛길로 샜다.
그래서, 독일 아가씨랑 연애하는데 너희 어머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몇 번이나 물었지만
와이프는 별로 신경을 안썼다는게 결론이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게 중요하니까 울 엄마 너무 신경쓰지 말아라.
당연히 우리 가족도 너를 엄청 좋아하고, 좋아하기를 바라지만 그게 아시아 문화처럼 우리 관계에 결정적 요소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며 몇 번이고 이야기를 하는 아내.
여담인데 나중에 프로포즈를 하기 전, 장인 장모님께 미리 찾아가서 일종의 허락을 구했더랜다.
나름대로 전통방식대로 좀 해보고자 했는데, 이러이러해서 따님과 결혼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하고 묻자
한번 크게 껴안아주신 후 장인어른이 내게 말씀하시길,
"네가 우리 가족이 된다면 나는 정말 기쁘겠지만, 어쨌든 결정은 울 딸래미한테 달린거야."
독일의 방식, 유럽의 방식, 문화의 차이, 비슷하지만 다르고 다른가 하면 또 되게 비슷하다.
오늘도 나는 독일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알쏭달쏭한 하루를 보낸다.